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가깝게 해준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가까워지기 위해서 내키지 않는 비밀을 털어놓은 적도.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말로 꺼내기 어려웠던 소중했던 비밀이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 다른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의 상실감.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가 다가와 내 손을 쥐었다. 나는 손을 빼서 그의 손을 더 힘껏 쥐었다. 오늘을 잊지 말자, 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울적해져 있었다. 상실될 걸 알고 있는 이의 고독이 묻어 있었다. 십 년 후, 이십 년 후...... 그때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마음이 복잡해져 나는 그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그가 손을 빼더니 내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나부터 독립적이고 당당하길 바란다. 숨김이 없고 비밀이 없으며 비난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원한다.
내가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옥상에서 그러고 있을 때 윤미루는 이 지하에서 이 음악을 들었던 것인가. 어쩌면 그 순간이 겹칠때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방에 가서 함께 밤을 보내는 일은 그 사람이 곁에 없을 때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게 되는 일이기도 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이 다가올까.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을 하나씩 통과해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함께 공유하면 상처가 치유될까.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때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길. 바래진 상처를 딛고 다른 시간 속으로 한 발짝 나아가길.
작별이란 그렇게 손을 내밀지 못한 존재에게 손을 내밀게 하는 것인지도. 충분히 마음을 나누지 못한 존재에게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도.
우리는 지금 깊고 어두운 강을 건너는 중입니다. 엄청난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강물이 목 위로 차올라 가라앉아버리고 싶을 때마다 생각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짊어진 무게만큼 그만한 무게의 세계를 우리가 발로 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산다는 것은 무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그가 공허한 목소리로 어서 세월이 많이 흘러갔으면 좋겠다, 정윤, 하고 말했다.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 아주 힘센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
인간은 불완전해. 어떤 명언이나 교훈으로도 딱 떨어지지 않는 복잡한 존재지. 그때 나는 뭘 했던가? 하는 자책이 일생 동안 따라다닐걸세, 그림자처럼 말이네. 사랑한 것일수록 더 그럴 거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어떤 시간을 두고 오래전, 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이라고 쓸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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